소통의 가능성

이전부터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최근에 교회에서 엄청나게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던 탓인지,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몇가지 남기고 싶은 결론에 이르렀다.

공감이 전제되지 않은 소통은 불가능하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개신교인은 동성애 이슈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설득이나 호소는 효과가 떨어진다.

물론 동성애 이슈에 관심이 많은 개신교인이 가지고 있을 자료들은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에 공감하게 되는데엔 되려 역효과가 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감을 이끌어낼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공감은 의도적으로 유도시킬수 없다.

공감에 제일 영향을 끼치는건 ‘계기’라고 생각한다. 통제되지 않은 것이면 더욱 좋다. 그러니 계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결국 친구가 이야기해줬듯이, 내가 할수 있는 건 ‘공감을 이끌어낼수 있을만한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하는 것’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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