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kev

우리는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한다.
모성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와, 그 자유의 효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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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여성에게 모성은 강요되어야만 하는가. 모든 강요가 폭력이라면, 강요하지 않는것은 얼마나 옳은 것인가.

에바는 갓 태어난 케빈을 가까이 안지 않는다. 이것은 에바의 입장에선 모성에 대한 거부의 행사 내지는 박탈감의 표현일수 있다. 에바가 여성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개인이었고, ‘준비되지 않았었다’는 점은 고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 등의 모든 점을 고려하고 나서도, 아이에게 남겨진 영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데 케빈의 “포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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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케빈이 에바에게 사랑받으려 시도하는 모습들만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은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된다. 거부감이 드는 색의 배치는 관객이 그 시도에 공감하기 어렵게끔 고의적으로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케빈의 경우, 그의 방식이 뒤틀린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에겐 그 방식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바는 정확히 케빈의 뒤틀린 표현에게만 사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성숙한 사람은 없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지 말라’고 외칠 수는 있다. 하지만 ‘부모는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줄것을 아이에게 기대하기란, 그 어떤 경우에서도 극도로 무리한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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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결국 타인을 상처입힐 권리를 포함한다. 자유를 충분히 부르짖기 위해선 케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 자유의 효과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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