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

(이 글은 독자가 스토리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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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호무라의 선택이 그렇게 복잡하게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호무라의 선택은 단 하나다. 다른 누군가의 소원도 아닌, 바로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겠다는 것.

차이점이 몇가지 있다. 선택 이전의 호무라에게는 자신이 고생하고 있다는걸 마도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선택 이후의 호무라는 인정받는지에 관계없이 오직 상대의 행복이라는 결과만을 바란다. 확실한 성장이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호무라의 선택이 마도카의 결의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틀렸다. 상대의 행동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과 상대의 행복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건 무게가 다르다. 후자가 훨씬 무겁고, 따라서 마도카의 결의를 없었던 것으로 하더라도 상대가 행복해진다면 된 것이다. 게다가 결의를 완전히 없었던 걸로 하지도 않는건 둘째치고, 마도카의 결의는 순전히 자발적인 결의도 아니었다. 마법소녀가 될까 말까 한껏 고민하던 차에 호무라가 나타나 마음을 털어놓은거고, 그걸 계기로, 자신에겐 괴롭겠지만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한것 뿐이란거다. 계기가 없었다면 발걸음도 내딛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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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카가 실제로 행복해졌는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호무라가 인정을 갈구하던데서 벗어나기로 선택했다는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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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도 행복해진것 같지만, 어쨌든.)

중반부 대화에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와 “환상을 존중해야 한다”의 갈등이 언급된다. 만약에 어떤 고통스러운 현실이 존재하고, 그것을 모른 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일까 아니면 바람직하지 않은걸까, 라는 질문이다. 호무라는 어느 시점에서, 마도카에게 자신이 고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주는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결론을 내린듯 하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이미 한번 그 현실을 알려줬었고, 그로 인해서 마도카가 쓸데없는 결의를 하게 된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맥락에서 호무라가 고생해왔던 것들은 이제 무의미해진다. [반역의 이야기]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까지 준비해놓았다. 주관적 의미부여와 실존주의가 그것. 선택 이후 연출에서 다음 그림과 같은 좌우대칭 이미지가 몇차례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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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에 사용될 법한 이미지다. 심리검사의 일종인데, 이미지 자체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들은 이 이미지를 의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같은 방식으로, 무언가가 무의미하다는것을 깨닫고 나면 그 빈 자리에 의미를 채워넣을 수 있게 된다. 프로이트의 Fort-Da도 차용했으니, 딱 맞는 소재이지 않은가.

반역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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