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모수적 세계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을 모아 보았다.

니가 뭔데 ( )는 ( )이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 )는 ( )가 아니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 )는 ( )이라고 정하는가?
니가 뭔데 ( )는 ( )가 아니라고 정하는가?

이 말들에 반영된 세계관은 일종의 비-모수적 세계관이다.
비-모수적(non-parametric) 세계관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실체(모수)는 무한히 가변적이며 무한히 불확실하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에 따라서 모수에 대한 일체의 추측/추정 시도를 포기하고 부정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위의 말들을 모수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바꿔보면 다음처럼 어색한 표현이 된다.

니가 뭔데 ( )는 ( )이라고 추측하는가?
니가 뭔데 ( )는 ( )가 아니라고 추측하는가?

그러나 비-모수적 세계관에는 추측이라는 개념이 없고 오로지 “개인적인 생각” 만이 존재한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는 ( )인 것 같습니다ㅜㅜ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는 ( )가 아닌 것 같습니다ㅜ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세계의 실체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무언가이며,
그 가변성에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지 않고 무한히 가변적이며,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언가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실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굳이 알 필요가 없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알려고 노력해야 하며,
누군가가 그것을 안다고 하는건 “주제넘은” 태도가 된다.

과학적 진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
모든 일반화는 나빠! 모든 일반화는 폭력이야!
그건 너의 의견일 뿐이야! 나는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

비-모수적 세계관에서 모수에 대한 결정권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모수에 정해져 있는 값이 없는 데에다 사람의 힘으로도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실체를 사람들이 합의해서 결정하겠다는 중세적인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혹은 모든 “개인적인 생각”들이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동등히 고려되는 “올바른” 토론에 의해, 혹은 어떤 “선생님”의 권위에 의해 결정해야만 한다는 중세적인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접근은 반드시, 남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비판을 받아들일줄 모르는 것이거나, 함부로 단정짓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는 중세적인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이다.

니가 뭔데 나를 ( )이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나를 ( )가 아니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이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가 아니라고 단정짓는가?

니가 뭔데 나를 ( )이라고 정하는가?
니가 뭔데 나를 ( )가 아니라고 정하는가?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이라고 정하는가?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가 아니라고 정하는가?

비-모수적 세계관이 인간관과 관련될 때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추가된다.
일단 위의 말들을 모수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바꿔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된다.

니가 뭔데 나를 ( )이라고 추정하는가?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이라고 추정하는가?

이 표현들은 전과 달리 덜 어색한데, 비-모수적 세계관이 인간관과 결합하면서 자신의 실체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요소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니가 뭔데 나를 ( )이라고 추정하는가? 나는 내가 정한다!
니가 뭔데 저 사람을 ( )이라고 추정하는가? 저 사람은 저 사람이 정한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 사람의 실체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무언가이며,
그 가변성에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지 않고 무한히 가변적이며,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언가이며,
추가로 그 사람의 결정권 안에 있는 무언가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굳이 알 필요가 없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알려고 노력해야 하며,
누군가가 그것을 안다고 하는건 “주제넘은” 태도가 되고,
추가로 타인의 실체를 추정하는 것은 결정권을 침범하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

예외가 있다. 비-모수적 세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자신의 결정권에 대한 침범으로 여기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기대로는 여길 수 있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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